「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서 보여지는 일본인의 정신세계

 

 

 목 차

 

1. 일본 최고의 고전작품「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1) 「겐지모노가타리」가 탄생된 시대적 배경

2) 「겐지모노가타리」의 문화 컨텐츠로써의 재생산

 

2.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가 보여주는 일본인과 일본문화

1) ものの怪 원령―신도神道, 사람도 신이 될 수 있다

2) 忍ぶ恋 감추는 사랑―와카和歌에 나타난 사랑의 모습

3) もののあはれ 모노노아와레―무상과 체념, 찰나의 미학

 

3. 모노노아와레의 문학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1. 일본 최고의 고전작품「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 헤이안平安 시대에 궁녀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에 의해 쓰여진 장편 소설이 있다. 바로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이다. 당대의 인기남 히카루겐지光る源氏가 다양한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총 54첩帖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쓰여져 있다.

 

 

1) 「겐지모노가타리」가 탄생된 시대적 배경

 

 일본 최고의 고전 작품으로 여겨지는 「겐지모노가타리」는 어떠한 배경에서 탄생하게 되었는가.

 

 9세기 말, 한자를 변형시켜 만든 가나仮名 문자가 출현하며 한자를 사용하는 남성 귀족 외에도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 문자는 여성의 문자로 여겨져 홀대 받았다. 가나 문자가 이러한 장벽을 뛰어넘게 된 계기는 와카和歌였다. 한시가 공적인 문학의 중심적 지위에 있던 분위기 속에서, 905년 천황의 명에 의해 편찬된 칙찬집勅撰集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 이후 와카의 지위가 상승하고, 와카를 표기하던 가나 문자 또한 공식적인 문학의 표기수단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당시 헤이안에서는 후지와라藤原 가문을 필두로 한 섭관정치가 융성하며, 수도 쿄京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궁정문화가 발달했다. 궁중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귀족사회가 형성되었고, 이 안에서 매우 제도화된 독특한 문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섭관정치는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의 시대에 가장 절정을 맞이하였다. 섭관정치 시기에 귀족들은 정치는 뒷전으로 한 채 화려한 연회를 즐기고 다양한 문화를 탐닉했다. 그 결과 정치는 쇠퇴했지만 질 높은 차원의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가나문자를 사용하여 문예창작활동이 가능하게 되면서, 섭관정치의 구조 아래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뇨보女房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겐지모노가타리」의 작자인 무라사키시키부 또한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딸인 중궁 쇼시彰子의 뇨보 중 한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겐지모노가타리」와 쌍벽을 이루는 헤이안 시대 작품인 일본 최초의 수필문학, 「마쿠라노소시枕草子」를 쓴 세이쇼나곤清少納言 역시 중궁 데이시定子의 뇨보였다. 이렇듯 궁궐을 중심으로 한 여류작가의 문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겐지모노가타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2) 「겐지모노가타리」의 문화 컨텐츠로써의 재생산

 

 「겐지모노가타리」는 현재에도 소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어 활발히 소비되고 있다. 단순한 고전 문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도 생생히 살아 숨쉬는 문화 컨텐츠로써 아직도 그 힘을 자랑한다.

 실제로 「겐지모노가타리」는 영화화 또한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 중 유명한 것이 2001년 호키카와 톤코 감독의 「천년의 사랑 히카루 겐지이야기千年の恋ひかる源氏物語」, 2011년 츠루하시 야스오 감독의「겐지모노가타리, 천년의 수수께끼源氏物語 千年の謎」 등이다.

 영화 외에도 1979년부터 1993년까지 잡지에 연재 된 소녀만화, 야마토 와키 작「아사키유메미시あさきゆめみし」 또한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2009년에는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이와는 별개로 「겐지모노가타리」 자체를 원안으로 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이것이 데자키 오사무 감독의 「겐지모노가타리 천년기 Genji源氏物語千年紀Genji」이다.

 

 이렇듯, 「겐지모노가타리」는 천 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까지도 일본인들의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겐지모노가타리」는 현재의 일본에서 어떻게 살아 숨쉬고 있으며, 일본인들의 정신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2.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가 보여주는 일본인과 일본문화

 

 이 작품은 크게 3부로 나뉘어진다. 제 1부가 「겐지모노가타리」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로 겐지의 탄생에서부터 결혼, 유배생활, 부귀영화 등이 그려진다. 주인공 히카루겐지는 천황의 황자로 태어난다. 그러나 기리츠보桐壷라는 낮은 신분의 후궁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천황은 그에게 겐지源氏라는 성을 하사해 신하의 신분으로 내린다. 죽은 기리츠보를 잊지 못하던 천황은 그녀를 쏙 빼닮은 후지츠보藤壷를 후궁으로 맞이하는데, 겐지는 어머니를 닮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겐지모노가타리」 전반에 걸쳐 그려지고 있는 겐지의 여성편력은 이 후지츠보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서 기인한다. 즉 「겐지모노가타리」는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기보다는 사랑에서 생겨나는 아픔과 슬픔을 담아낸 작품이다.

 

 

1) ものの怪 원령―신도神道, 사람도 신이 될 수 있다

 

 「겐지모노가타리」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헤이안 시대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니고 있던 시대였다. 이것이 바로 모노노케ものの怪, 원령이다. 궁궐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귀족문화를 꽃 피우는 한편, 그 반대편에는 원령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다. 죽은 자에 대한 공포가 산 자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헤이안 시대의 성립배경에 원인이 있다.

 고대 나라奈良 시대 말기에서부터 헤이안 시대에 걸쳐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투쟁이 끝없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사회의 불안이 증대되었다. 여기에 수도를 중심으로 전염병이나 천재지변이 속출하자 그것이 정치싸움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자들의 영혼이 저주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의 저주를 풀고 원령을 달래고자 진혼의식이 생겨났고, 그들을 신으로 모시게 되었다.

 

 정치적 패자의 원한 말고도 원령이 등장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 「겐지모노가타리」에 나타나고 있다. 로쿠죠노미야스도코로六条御息所라는 여성의 사랑의 원한이다. 그녀는 미망인의 신분으로 겐지와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겐지가 자신을 찾는 것이 뜸해지고 다른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자 이에 질투를 한 나머지 생령이 된다.

 이렇게 생령이 된 그녀는 임신한 겐지의 정실, 아오이노우에葵上를 괴롭힌다. 그녀 스스로도 원하지 않았던 원령이 되어 아오이노우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로쿠죠노미야스도코로가 원령이 된 것은 겐지에게 과도하게 집착했고, 그 결과 그의 사랑이 떠난 것에 대해 강한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겐지모노가타리」 속에서 임신한 아오이노우에에게 원령이 씌인 것으로 표현된 것은 당시 임신과 출산 과정이 죽을 고비와도 비견될 정도로 여성에게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오이노우에는 출산이라는 어려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원령이 씌여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에서 아오이노우에의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으로 원령을 지목하고 있는 것은 헤이안 시대 사람들의 믿음에서 기인한다. 인간의 모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병의 원인은 바로 원령이 품은 원한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노노케란 당시 매우 일상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생활의 일부로써 헤이안 시대 사람들과 함께 했다. 따라서 모노노케를 달래는 진혼의식이 성행하며 죽은 자를 신으로 받들어 모셨고, 이것은 신도神道라는 종교의 형태로 남아 현재에도 일본인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신도는 자연물이나 사자死者를 포함해,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여겨지는 모든 것을 신격화시킨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신도란 종교라는 인식 이전에 생활양식의 하나로 그들의 일상생활에 녹아들어 있다. 따라서 이는 매우 현세적인 특징을 띈다. 대부분의 근대종교가 현실과 괴리된 절대적인 무언가를 이루려는 것을 목표로 하거나 절대자인 유일신을 교리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신도는 일상과 가까이에 존재한다. 신도에서는 유일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팔백만의 신八百万の神이라는 단어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들은 삼라만상에 신이 깃들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마음에 신이 깃드는 것이며 인간 또한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생활윤리의 실천만으로도 충분히 현세에서 신에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현세구원사상이 강하기 때문에 신도를 따르는 일본인들은 종교적 신앙심을 갖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종교를 가지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신사神社를 찾는다. 그만큼 전통과 습속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과정으로써 신도는 일본인들의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있다.

 

 

2) 忍ぶ恋 감추는 사랑―와카和歌에 나타난 사랑의 모습

 

 「겐지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 가운데에서도 그 중심부에 위치하는 것은 단연, 천황의 새 후궁인 후지츠보이다. 겐지의 어머니 기리츠보와 닮은 외모로 그로 하여금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결국 겐지의 마음은 이성을 향한 연모의 감정이 된다. 겐지는 옳지 못한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후지츠보를 향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은 드러내려 해도 절대 드러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겐지도, 후지츠보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헤이안 시대에는 서른 한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시, 와카和歌가 성행했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헤이안 시대에는 천황의 명령에 따라 여러 권의 칙찬집이 제작되었다. 다양한 주제로 읊어진 와카는 ‘사랑’을 노래한 것이 가장 많은데, 이는 남녀 사이에 만남의 기회가 적었고 주로 밤에만 만나던 사랑의 형태에 있어 와카가 그 마음을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테마로 한 많은 와카 중에서도 ‘감추는 사랑忍ぶ恋’을 최고의 사랑의 미학으로 여겼다.

 

玉の緒よ 絶えなば絶えね ながらへば 忍ぶることの よわりもぞする

덧없는 목숨 차라리 끊어지길 이대로 살아도 남 모르는 괴로움 견딜 수 없을테니[각주:1]

 

 위 와카는 신코킨슈新古今集에 실린 쇼쿠시내친왕式子内親王의 작품으로 시노부코이의 감성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전해지는 와카이다. 여기에서 타마노오玉の緒란 구슬을 꿰어놓은 줄을 가리키는 것으로 목숨줄이라는 의미의 魂の緒와 발음이 같으므로 두 가지의 의미를 동시에 담은 카케코토바掛詞로 쓰이고 있다. 이 와카를 읊은 가인歌人, 쇼쿠시내친왕은 황녀이면서 가모신사賀茂神社의 사이인斎院이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야만 했다. 그러한 자신의 위치 때문에 숨길 수 밖에 없던 비밀스러운 마음을 와카를 통해 노래한 것이다.

 

 이와 같이 와카에서는 비밀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 높게 평가받았다. 이는 당시의 연애나 혼인의 형태에서 기인한다. 처음 알게 된 남녀는 얼굴을 맞대지 않은 채로 와카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렇게 편지를 계속 주고받으며 사이가 가까워지면 남자가 밤에 여자의 집으로 찾아간다. 이렇게 3일 간 연속으로 남자가 여자의 집을 찾으면 결혼이 성립되어 부부의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면 남자의 발걸음은 점점 뜸해지고 여자가 기다리는 시간들이 많아진다. 바로 이러한 사랑의 형태가 와카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의 와카는 주로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읊어지거나, 만나지 못한 채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혼자서 몰래 간직하는 마음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겼다. 비밀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미화하며 많은 와카가 읊어졌고, 이러한 감성은 현재까지도 남아 유행하는 노래나 영화 등에 나타나고 있다.

 

 

3) もののあはれ 모노노아와레―무상과 체념, 찰나의 미학

 

 「겐지모노가타리」에서 겐지는 후지츠보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감출 수 없어 괴로워한다. 후지츠보 또한 겐지를 향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워한다. 결국 겐지와 후지츠보는 사랑을 나누는데, 이로 인해 후지츠보에게서 아이가 태어나고 결국 그 아이가 후에 레이제이冷泉 천황으로 등극하면서 겐지는 아버지를 배신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처럼 「겐지모노가타리」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고 보면 커다란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이야기이다. 이것을 에도江戸 시대의 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모노노아와레란 사물을 보았을 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상에 대해 마음 속 깊이 애절하게 느끼고, 여운이나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겐지모노가타리」에 그려진 겐지와 많은 여성들의 사랑 이야기를 보고 윤리나 도덕을 따지지 않고 보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모노노아와레적 정서이다.

 겐지의 행동은 일반 상식으로 본다면 무례하게 느껴지지만, 문학 속에 그려져 있는 것은 일반 사회의 통념적 가치와는 다르기 때문에 ‘좋은 것을 좋게 나쁜 것을 나쁘게 슬픈 것을 슬프게 애틋한 것을 애틋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문학을 제대로 즐기는 법이며 모노노아와레를 깊이 안다는 것이다. 이렇듯 모토오리 노리나가에 따르면 「겐지모노가타리」야말로 모노노아와레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며 「겐지모노가타리」 전체의 미적 이념이 바로 모노노아와레라고 한다.

 

 모노노아와레란 이처럼 유교적인 권선징악에서 벗어난 인간 본성의 진실에 더욱 가까운 순수한 감정을 가리킨다.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주장에 따르면, 문학의 본질이란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에 있다. 일본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神의 도道가 순수하게 발현된 형태가 바로 모노노아와레이며, 이것이야말로 일본인의 순수한 혼이라는 것이다. 윤리적 틀에서 벗어나 재발견된 미의식은 일상과 유리된 형태로 존재한다. 즉 이러한 모노노아와레적 정서를 가진 일본인은 선악의 기준을 절대적인 도덕이나 윤리적 잣대에 두지 않고 철저히 사물을 보는 감각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것은 결국 미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특성을 띈다.

 

 이 모노노아와레의 감정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오카시をかし이다. 이것은 세이쇼나곤清少納言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에서 주로 나타나고 있는 감정이다. 모노노아와레가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고 몰입했을 때 발생하는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애절한 감정이라면, 오카시는 밝고 명랑한 느낌을 준다. 이것은 대상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바라보았을 때 느끼는 지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이라 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비평적이며 주지적인 특성을 띈다.

 무라사키시키부의 「겐지모노가타리」가 허구의 세계를 아름답고 애절하게 그리고 있다면 세이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는 자연이나 인간사에 걸쳐 쇼나곤 본인의 관심이나 체험, 감상 등을 자유롭게 적어 내려갔다. 작가의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 톡톡 튀는 개성이 간결하고 명쾌한 문체로 표현된 일종의 수필집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천년의 사랑 히카루 겐지이야기」에서 흐르는 ‘꿈인가 생시인가 환영인가, 세상사는 잠시 잠깐뿐인 것을夢かうつつか幻かこの世のことはかりそめぞ’는 찰나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며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각주:2] 이처럼 「겐지모노가타리」에서는 모노노아와레를 통해 세상은 짧고 무상하기 때문에 멋이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본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벚꽃桜은 바로 이러한 찰나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면서, 인간과 자연의 질서가 합치되는 지점으로써 인생의 덧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듯 인생의 허무함과 찰나의 미학을 드러내는 모노노아와레적 정서가 곧 일본인의 에토스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3. 모노노아와레의 문학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모노노아와레를 아는 것, 모토오리 노리나가에 의하면 그것은 도덕적 결단이나 행위와는 무관하며, 끊임없이 흔들리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겐지모노가타리」를 기존의 유교 및 불교적 가치관에서 해방시켰다. 모노노아와레라는 미학세계야말로 인간 본성에 보다 가까운 일차적 세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모노노아와레적 관념은 결국 인생은 무상한 것이며, 유교적 권선징악은 중요하지 않다는 일본인들의 사상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겐지모노가타리」가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서정성, 그것은 유교적인 도덕원리나 윤리와는 별개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선악의 기준을 하늘이나 인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무언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보는 감각에 의존하는 일본인의 특성이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사물을 보았을 때 느끼는 아름다움, 강렬한 미의식은 도덕적인 번뇌를 압도시킨다. 그럼으로써 유교적 엄숙주의 이전에 정서를 중시하고 미를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게 된다.

 모노노아와레론論에 따르면 와카란 마음에 떠오른 것을 선악에 관계없이 읊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신도와도 관련을 갖는데, 신도에서 신으로 떠받들어 모시는 존재는 선함이나 악함과는 관련이 없다. 신이 화를 내 인간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두려워하며 삼가 모실 뿐이다. 신도 사상에서 악에 대한 관념이 희박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겐지모노가타리」이후, 문학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서정성이 중요시 되었다. 그로 인해 서사적 문학이나 사상 분야의 발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상황이나 사건의 전말보다는 각 인물의 내면이나 언행에 치우치는 경향이 발견된다. 또한 「겐지모노가타리」에 의해 허구의 효용이 극대화 된 이후로 허구로써 인간 본질을 파악하려는 성향이 강해졌다. 이 또한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기준과는 별개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는 모노노아와레적 정서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일본인들은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지 않는다. 선과 악에 대한 관념적 사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따라서 그들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특성을 띈다. 그들에게 ‘절대’라는 개념의 정당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류 보편이라는 관념 또한 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인의 사유는 관념적이지 않다. 현실적이며 구체적이고 평이하다. 경험이 있고 사람이 있으며, 아는 것이 행하는 것, 행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라는 행위적 직관[각주:3]은 여기에서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그들의 믿음은 바로 이러한 상대적 사유주의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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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승, 「일본인과 일본문화」, 재팬리서치21, 2012.

박규태,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 히메까지 ―종교로 읽는 일본인의 마음」, 책세상, 2001.

박규태, 「상대와 절대로서의 일본 : 종교와 사상의 깊이에서 본 일본문화론」, 제이앤씨,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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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일본 문화 그 섬세함의 뒷면」, 책세상, 2001.

유옥희, 「하이쿠와 일본적 감성」, 제이앤씨,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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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일본정신」, 모시는사람들, 2009.

임찬수, 「百人一首 : 일본 고전 시가의 정수」, 문예원, 2008.

정순분, 「일본고전문학비평」, 제이앤씨,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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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연구회, 「일본과 일본문화」, 불이문화,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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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누키 에미코,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이향철 역, 모멘토,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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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옥희, “와카에 나타난 사랑의 수사(修辭)와 그 미학”, 젠더와 문화 제 4권 1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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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찬수, 「百人一首:일본 고전 시가의 정수」, 문예원, 2008. [본문으로]
  2. 유옥희, “와카에 나타난 사랑의 수사(修辭)와 그 미학”, 젠더와 문화 제 4권 1호, 2011. [본문으로]
  3.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 1870-1945 [본문으로]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https://docs.google.com/file/d/0B4K4AZZfd0cQXzFrUGhsUjhRSlE/edit?usp=sharing


사실 발표보단 그냥 말할때의 참고자료 정도로 만든 ppt지만 최근 올린게 없어서...

jpg화해서 올리는건 학교에서 하겠습니다... 제 컴에 ppt 안깔려있어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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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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